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 툭, 데구르르. 바닥에 떨어진 색색의 조각들이 나뒹군다. 인형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하나하나 그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조그만 손에 다 들어가지 않는 것을 다가온 검은 옷의 사내가 마저 주워 들었다. ─이게 마지막인가. 나지막한 목소리에 인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작은 일기장에 짤막하게 휘갈긴 글씨가 군데군데 뭉그러져 있다. 사내는 빈 손을 뻗어 연갈색 머리를 쓰다듬고는, 조각들을 한 데 모았다. 사내-콘라드-는 이내 조각에서 제게로 하나 둘씩 스며드는 과거의 기억에 인상을 찡그린다. 아프다, 괴롭다. 또한 슬프다. 잠깐이나마 잊고 있던 수많은 죄업들과 자신의 마지막을 움직이는 그림 따위를 보듯 직접 들여다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비오듯 흐르는 식은땀과, 불쾌하게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한에 견디지 못하고 꼴사납게 주저앉았다. 눈 앞이 새빨갛게 물들더니, 실 끊어진 인형마냥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돌아온 기억은 끝이 났다. 무표정한 얼굴로 저를 들여다보는 인형을 마주 보며, 씁쓸히 웃음을 지었다. ─그다지 좋은 인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 말을 건네자 인형은 고개를 젓고는 일기장에 무언가 쓰려 머뭇거리다, 끝내 무엇도 쓰지 않고 제 치맛자락을 꼭 쥐고 돌아섰다. ─이만 작별할 시간이다. 뒤에서 들리는 무정한 성녀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눈 앞의 조그만 어깨가 유난히 떨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잘 있어라. 이 삭막한 세계에서 지시자를 만나 다행이었다. 짧게 말을 뱉어 내고는 성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니. 신의 안배가 있다면 다음에 또. 콘라드가 성녀와 사라지자마자, 인형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치맛자락이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쓸려 지저분해졌으나, 신경쓰지 않고 바닥에 흩어진 조각의 부스러기 따위를 하나하나 주워 모았다. 너덜거리는 손가락으로 어렵사리 모은 조각들을 소중한 것마냥 품에 꼭 껴안았다. 끝끝내 보내고 싶지 않던 마지막 전사마저 현세로 떠났다.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으나,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동그란 유리알로 만들어 박았을 눈에서 물 비슷한 것이 바닥으로 투둑, 떨어졌다. 삐걱거리며 움직이던 손에 힘이 빠지고, 소중히 그러안았던 조각의 가루들이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진 위로, 인형이 쓰러진다. ─아아, 어머니.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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